"미안, 많이 늦었지?"
후아~ 숨을 몰아쉰다. 지하철역에서부터 뛰어오느라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주제에 그녀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달려왔다.
"괜찮아. 어휴, 옷 좀 봐. 다 젖었잖아? 춥지 않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우며 옷에 묻은 비를 털어주는 그녀의 손길. 아, 이런 여자를 빗속에서 기다리게 하다니, 나란 놈은 정말 최악이다.
오래간만에 보는 그녀. 학교 다닐때의 인연으로 군대에 와서도 가끔씩 전화를 주고받으며 목소리를 듣고는 있지만, 역시 직접 만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오늘, 그녀를 이곳까지 불러낸 것은(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학교에서 직접 만나지 않고 학교로 가는 도중에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런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녀와 나란히 우산을 쓰고 학교로 간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얼굴을 본다. 휴가 마지막날인 오늘이 지나면 또다시 한동안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더 집중하려 한다. 그럴수록 빗소리가, 빗줄기가 그녀와 나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아 조바심만 날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학교 정문에 도착해 버렸다..... 에잇!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있잖아, 항상 너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네가 있었기에 힘든 일들도 참을 수 있었고, "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 같은 나라는 존재도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거라는 자신을 얻을 수 있었어"
"그런 고마운 너에게, 널 항상 옆에서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지켜준다고 말해놓고, 내일이면 다시 또 떨어져 지내야 겠지만,"
"이런 나라도, 널 좋아해도 될까?"
.................
그녀와 나 사이의, 한동안의 정적.
내 귀에는 오직 빗소리만 들릴 뿐이다. 아까는 그렇게도 얄밉던 빗소리가, 그녀의 대답을 가려주는 것이 고맙게 느껴질 즈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임 상병님, 근무들어가실 시간이지 말입니다."
"정 일병, 임 상병님 깨워드렸어?"
"예. 근데 일어나자마자 막 화를 내시더니 갑자기 우시지 말입니다. 임 상병님 집에 무슨 일 있는지 말입니다??"
※ 실화입니다. 역시 저같은 놈이 무슨 여자친구입니까 ㅡㅜ 아 현실은 시궁창 ㅡㅜ |